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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위탁가정 어디까지 왔나 (상) 우리는 특별한 가족입니다

작성일 : 2023-03-08 조회 : 3,682

경남 위탁가정 어디까지 왔나 (상) 우리는 특별한 가족입니다

품을 땐 찐사랑 키울 땐 찐부모
양산 예민숙씨, 미나와 ‘2년 차 가족’
원가정서 분리된 아이에 행복 주고 싶어

  • 기사입력 : 2023-03-01 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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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탁가정’은 보호가 필요한 아이가 시설보다는 가정에서 양육되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위탁부모는 ‘두 번째 부모’라고 불린다. 아이가 따뜻한 가정 속에서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게 울타리를 자처한다. 실제 위탁가정을 통해 경남 위탁가정의 모습과 현황을 들여다본다.


    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기본단위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다양하게 변화하면서 우리는 가족의 의미를 통상적인 범위 너머에서 찾을 수 있게 됐다. 가족(家族)이나 식구(食口)의 의미와 같이, 한 지붕 아래 서로가 의지하고 함께 돌보며 생계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가족’이라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바라본 위탁가정 또한 ‘가족’이다. 오직 이타적인 사랑과 사명으로 엮인 이들 사이는 핏줄보다 더 견고하기도 하다.

    예민숙(42)씨와 미나(4·가명)는 ‘가정위탁’ 제도로 이어진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모녀다. 매번 온몸을 부딪히듯 안기는 미나와 그런 미나의 작은 머리를 감싸는 민숙씨를 볼 때, 마주 본 두 모녀가 어딘가 닮은 반달 눈꼬리를 접으며 쾌활한 웃음을 지을 때, ‘가족’에는 정해진 형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예민숙씨가 미나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고 있다.
    예민숙씨가 미나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고 있다.

    ◇상처 없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주고 싶어= 따뜻하고 춥기를 반복하던 1월의 어느 날, 어린이재단 경남가정위탁지원센터 상담사와 함께 양산에 있는 민숙씨와 미나의 집을 찾았다.

    뾰족하게 양 갈래를 묶은 미나는 다홍치마와 하늘색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나타났다. 민숙씨가 손님맞이를 위해 공을 들여 입힌 한복이었지만, 미나가 인사를 하고는 1분도 안 돼 바닥으로 뿌려졌다. 민숙씨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한복을 곱게 접어 가져갔다.

    한복을 벗고 하늘색 잠옷을 입은 미나는 부산하게 뛰어다니며 장난감과 인형을 들고 ‘상담원 삼촌’에게 자랑한다. 슬하에 자녀를 둔 적이 없었다는 민숙씨의 집은 놀이방이다. 거실 벽면에는 갖가지 동화책과 장난감, 인형이 가득하고 바닥에는 뽀로로가 그려진 아동용 매트가 깔려 있었다. 대부분 민숙씨가 미나를 기다리며 사 온 것들이다.

    “미나가 이곳에 와서 재미있게 잘 놀기를 바랐어요. 아무런 상처 없이요. 미나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3주간 장난감이나 인형을 하나둘 사다 보니 어느새 집이 놀이방이 됐더라고요.”

    그는 미나의 마음에 작은 상처도 나지 않기를 바랐다. 미나는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갓난아이일 때 원래 가정에서 분리됐다. 갓난아이 시절이라 그때의 상처를 기억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민숙씨는 미나가 자신과 함께하면서 그 상처가 모두 치유되고 더 나아가 평범한 아이와 같이 행복한 삶을 즐겼으면 했다.

    그의 마음처럼 미나의 하루는 하루하루가 놀이 파티다. 잠시 일을 쉬고 있는 민숙씨는 온종일 미나와 놀며 이제는 미나에 관해서는 박사가 됐다.

    민숙씨가 미나와 함께 산 지 어느덧 2년 차에 접어들었다. 미나가 짧은 말들로 사람들에게 의사를 전달할 때나, 종일 달고 지내던 기저귀를 뗐을 때. 민숙씨는 함께한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구나 새삼 놀라움을 느낀다고 했다. “작년 12월에는 미나가 기저귀를 뗐어요. 벌써 많은 추억이 쌓여있네요. 아이와 함께 웃고, 울고, 부딪히고, 사랑하면서 그렇게 가족이 됐습니다.”

    예진숙씨가 가정위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예진숙씨가 가정위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이의 비빌 언덕이 되다= 민숙씨가 ‘가정위탁’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지난 2019년. 부산에 들렀다가 ‘위탁 부모’를 모집하는 현수막을 보고서다. ‘잠시만 나의 엄마, 아빠가 되어주세요’라는 현수막 글귀가 그의 발길을 멈추게 만들었다.

    “예전부터 위탁가정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연했을 뿐 ‘내가 해봐야겠다’는 명확한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은 그 현수막의 글귀가 너무 눈에 띄더라고요. 나도 누군가의 비빌 언덕이 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어요.”

    민숙씨는 그 길로 가정위탁전문센터를 찾아 예비 위탁 부모 교육을 받고 가정 현장 조사와 인터뷰를 거쳐 예비 위탁 부모가 됐다. 어린이집을 하던 민숙씨는 보육교사 자격증 등 전문자격증이 있었기에 ‘전문 위탁가정’의 자격을 받게 됐다.

    보통 학대 피해를 받았거나 장애가 있는 아동, 36개월 이하의 어린 아동 등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대상 아동들은 전문 위탁가정과 이어진다. 가정과 분리가 된 당시 생후 10개월도 안 된 미나도 그 대상이었다. 민숙씨가 위탁 부모 신청을 해 놓은 이후, 2021년이 되어서 소식이 들어왔다.

    민숙씨가 미나를 껴안고 첫 만남을 떠올렸다. 두 모녀의 첫 대면은 2021년의 여름, 가정과 분리된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양산의 한 ‘그룹 홈’에서다. 그해 2살을 맞은 미나는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작았다. 민숙씨 부부는 또래보다 왜소한 미나의 모습에 마음이 더 쓰였다. 민숙씨는 그날의 기억이 선하다고 말한다.

    “처음 집으로 오는 길에 미나가 잠이 들었는데 집에 오고 나서 낯선 환경인지 깜짝 놀라 울었는데, 또 금방 적응해서 잘 놀았죠. 어린이집을 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은 참 익숙한 일이었는데, 우리가 키울 아이라고 생각하니 또 다른 기분이었어요. 초보 엄마, 아빠가 된 것 같았죠.”

    위탁가정을 망설이던 민숙씨의 남편 또한 어엿한 ‘딸 바보’가 됐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껴안고 바닥에 내려놓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민숙씨와 남편은 미나를 딸로, 미나 또한 엄마와 아빠로 부른다. 당연한 일이다. 틈만 나면 미나를 껴안고 예뻐하는 민숙씨 부부 덕에 미나의 18번 말버릇은 ‘안아줘’가 됐다.

    예민숙씨가 미나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고 있다.
    예민숙씨가 미나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고 있다.

    ◇어떤 형태라도 ‘가족’= 민숙씨 부부에게는 평범한 부모와 같은 고민거리가 있다. 입이 짧은 미나가 먹는 걸 좋아하지 않아 영양제를 먹여야 한다거나, 미나가 또래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 해 빨리 어린이집을 보내야 하냐는 의논까지 꼬리를 무는 고민이 다양하다. 반면, 위탁가정의 부모이기에 직면해야 하는 고민도 있다.

    위탁가정의 부모들은 돌보는 아동에게 태생적인 가정이 있음을 알리고 지금의 가정이 ‘위탁가정’인 것을 인지하게 만든다. 아동이라도 자신이 처한 정확한 환경을 알 권리가 있다는 ‘어린이 인권’ 차원에서다. ‘4살이 되면, 5살이 되면 얘기를 하자’고 고민하던 민숙씨 부부의 앞에 그 시기가 더 빠르게 다가왔다. 미나의 친부모가 다시 미나와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다.

    “원가정으로의 복귀 사례가 사실 많이 없다 보니 미나가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가 계속 보살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친부모에게 다시 미나를 데려오고 싶다는 얘기가 들어와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졌죠.”

    UN아동권리 협약에서도 ‘아동이 친부모와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때문에 친부모의 의지가 분명하다면 다시 원가정으로 복귀될 기회 또한 분명히 주어져야 한다. 위탁센터와 지자체는 장기적인 상담과 조사를 통해 원가정의 환경이 아동 복귀에 적합한지 등을 심사하고 판단하게 된다.

    위탁가정에게 이별은 숙명이기도 하다. 아동이 원가정에 복귀하거나 성인이 되면 이전과 같이 한 지붕 아래 함께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위탁 부모와 위탁 아동이 더 이상 ‘가족’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민숙씨는 자신의 허리에 매달린 미나를 보듬으며 말했다.

    “‘위탁’이 제도적으로는 종결될 수 있지만 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으로 복귀한 아이들은 위탁 부모를 ‘큰엄마, 큰아빠’라고 호칭한다고 해요. 어떤 형태든 함께했던 기억이 있는 한, 계속 가족인 셈이죠. 떨어지게 된다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랑해 줄 수 있을 때까지 넘치도록 사랑해 주려고 해요.”

    글·사진= 어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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